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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상반기 커피챗 회고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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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in read
2024 상반기 커피챗 회고

Product Engineer & Civic Hacker in Seoul, Korea.

들어가기 앞서

신입 개발자는 불안하다.

내가 잘 따라가고 있는 건지, 나의 어디가 부족한지, 어디서 뭘 해야 취직 혹은 이직을 잘할 수 있을지, 심지어 내가 지금 뭘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런 시기를 거쳤다.

솔직히 지금도 가끔 위와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왠지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리액트랑 Next.js의 업데이트 속도에 멀미가 날 때, 다른 개발자들 틈에서 소외된 기분이 들 때마다 불안은 노크 없이 찾아왔다. 어쩌면 개발자라고 하기에도, 개발자가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지금의 내 스탠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어색한 사이'란 게 바로 이런 느낌일까?

특히 물류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마음이 더욱 조급해졌다. 이러다 영원히 IT 업계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부족한 시간을 쪼개 정보처리기사에 응시하고 알고리즘 문제를 푸는 스터디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래도 조급함과 고립감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1. 커피챗을 어디서 구하고 누구랑 만났나

커피챗을 자주 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혹시나 커피챗을 어떤 루트로 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한 신입 개발자 분이 정리한 글을 공유한다.

https://velog.io/@prettylee620/%EC%BB%A4%ED%94%BC%EC%B1%97%EC%97%90-%EB%8C%80%ED%95%98%EC%97%AC

)

 

나는 X(구 트위터)에서 주로 활동하기 때문에 X에다 커피챗 할 사람을 찾았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5월에 커피챗하실 분~~ 마음 찍으시면 디엠 드립니당"

의외로 꽤 많은 분들이 내 요청에 응답했다.

그렇게 상반기 동안 총 9번의 커피챗을 했다.

 

나는 프론트엔드 개발자지만 커피챗을 하는 데 있어 딱히 포지션이나 도메인을 상관하지 않았다. 나와 같은 프론트엔드 개발자부터 시작해서 자바/코틀린 백엔드, 심지어는 마이너 언어를 사용하는 개발자도 있었다. 연차도 학생, 취준생부터 시니어까지 다양한 분들과 만났다.

내가 처한 상황과 비슷한 분들도 있었고 내 상황과 조금(혹은 많이) 차이가 나는 분들도 있었지만, 커피챗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받기도 하고 또 주기도 했다.

 

  1. 잊지 마 네가 두고 온 토슈즈

커피챗을 하다 보면 내가 취준생이라서, 혹은 신입이나 주니어라서 주눅이 들거나 작아지기 십상이다.

나 역시도 작년 한 해는 커피챗이나 멘토링 등을 하면서 "열심히 했는데도 취업이 안 돼요", "대체 뭐가 부족한 거죠? 앞으로 뭘 준비해야 하나요?" 같은 얘기를 하곤 했다.

마치 먹고 살기 위해 용접 배우듯 부트캠프에서 개발을 배워 아무 곳에서나 개발을 하면 될 줄 알았다.

근데 웬걸, 채용 시장은 급격히 나빠졌고, 부트캠프에서 최신 기술 스택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든 건 오히려 변별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되었다. 커피챗을 해도 멘토링을 받아도 "나쁘진 않은데 애매하다"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다. 당연히 자존감도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접근 방식을 아예 바꿨다.

활동명도 바꾸고 부트캠프에서 만든 포트폴리오도 모두 내렸다.

(현재 나한테 남은 포트폴리오는 이것밖에 없다.

https://chromewebstore.google.com/detail/feca-%ED%8E%98%EB%AF%B8%EB%8B%88%EC%A6%98-%EC%96%B4%ED%9C%98-%EC%82%AC%EC%A0%84/ehonkjdlmkoihpofpmfbgnjoigkpoopb?hl=ko )

 

대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지향하는 개발자의 상이 어떤지, 이를 위해 어떤 식으로 커리어를 준비하고 있는지 담백하게 얘기했다. 반응은 꽤 좋았다. 모두가 내게 잘하고 있다고 했고 다음 행보를 기대했다. 오히려 내 이전 활동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꽤 있었다. 내가 '문과 출신 비전공자', '부트캠프 출신 취업준비생'이란 틀에 구애 받았으면 유의미한 자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오히려 나보다 어리거나, 커리어가 길지 않은 주니어 분들한테는 내 과거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조언을 하기도 한다. 르세라핌 멤버 카즈하 씨가 '잊지 마 내가 두고 온 토슈즈' 란 소절을 부르며 다리를 쭉 올리지 않았던가.

(카즈하 씨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일본 유명한 발레 콩쿠르에서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고등학교 때는 네덜란드 국립 발레 아카데미에서 유학할 정도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발레리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뒤로하고 케이팝 아이돌이 되었다.)

 

나한테도 두고 온 토슈즈가 있다. 비록 카즈하 씨처럼 탁월한 기량을 가지고 성과를 냈던 건 아니었지만 이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개발자를 준비하면서 모든 과거를 묻어두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을 생각하면 그때의 경험들을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게 내 캐릭터가 되었던 것 같다. (글쓰기 역시 내 토슈즈 중 하나다.)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 역시 바둑 경력을 바탕으로 회사 생활을 헤쳐오지 않았던가? 때문에 커피챗이나 멘토링에 앞서 당신이 두고 온 토슈즈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토슈즈 - 나무위키

 

  1. 내가 얻은 인사이트

쓰다 보니 서두가 길었던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 내가 커피챗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가 궁금할 것이다.

  • 현업에서 일해본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 일과 일상을 병행하며 공부를 하자

  • 트렌드보다 중요한 건 결국 생산성이다

  • 스스로 택한 기술을 왜 사용하는지 이해하고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자

  • 좀 더 제너럴한 관점에서 도메인과 포지션에 접근하자

  • 회사에 지원할 때는 그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과 질문을 가득 들고 가는 게 좋다

  • 사람과 회사를 보는 안목을 기르자

  • 좋은 개발자가 되기 전에 좋은 동료가 되자

  • 대외적으로 유명한, 좋은 회사에 다니는 개발자가 꼭 좋은 동료는 아니다

  • 팀 프로젝트는 가급적 오프라인으로, 제대로 팀 빌딩을 하면서 진행하자

 

  1. 마치면서

다른 포지션에 비해 개발자들은 지식 공유나 네트워킹 같은 부분에서 꽤 많이 열려 있다.

나는 이 부분에 매력을 느껴 계속 개발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막막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주저하지 말고 커피챗이나 멘토링을 신청하자. 막막함도 털어놓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새로운 기운, 새로운 인사이트를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리코(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작중 행적 - 나무위키

 

 

이대로 끝내긴 아쉬워서 붙이는 사족

(내가 포켓몬 덕후라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개발자도 어떻게 보면 포켓몬 트레이너 같단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만화 포켓몬스터(2023)에서도 주인공 리코(내 썸네일에 항상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에게 포켓몬 트레이너도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고 조언해주는 어른 조력자들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포켓몬 배틀을 잘 하는 트레이너만이 진정한 트레이너가 아니란 말이다. 어른 조력자들 역시 포켓몬 박사, 요리사, 엔지니어 등 다양한 진로를 갖고 포켓몬과 활동하고 있다.

고민 끝에 리코는 '포켓몬의 마음을 이해하는 트레이너'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애들 보는 애니메이션의 수준이 꽤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마찬가지로 개발자 역시 다양한 유형이 있다. 보다 제너럴한 시각으로 서비스에 접근하는 개발자도 있고 테크니컬한 부분에서 끝장을 보는 개발자도 있다. 또 지식 공유나 강의, 집필에 진심인 개발자도 있고 회사 일이 아니면 굳이 다른 이슈에 관심 없는 개발자도 있다.

무엇이 '진정한 개발자'인지에 대한 논쟁은 저 멀리 던져버리자. 또 종종 수면 위로 올라오는 '진개라이팅(진정한 개발자가 되라는 가스라이팅)'에도 굳이 연연하지 말자.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당신이 속한 팀이나 회사에, 넓게는 이 생태계에 기여하고 있다면 그걸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